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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반도평화기도회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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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한국 605

본문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평화'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명령이며 모든 피조물의 갈망이다. 1945년 이래 73년간 분단과 대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거민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평화를 특정 정파의 가치로 몰아붙이고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힘의 우위에 서는 것을 평화라고 잘못 가르쳐 왔다. 그 결과 평화적 수단으로 도달하는 상호 협력의 온전한 평화를 포기한 심성이 만연하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평화 상태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환대하지 않았다.

평화의 기반이 허약한 교회는 심리 조작과 선전 선동으로 거짓된 권력과 불의한 이를 탐하는 악인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교회 밖 시민들조차 혀를 차는 허무맹랑한 반평화 선동이 어떻게 집사와 장로와 목사에게 통할 뿐 아니라 그 손가락을 통해 전파될 수 있는가. 복음을 가진 자들의 열매는 생명이 충만한 지성일진대, 오늘날 상당수의 교회들은 고상한 지성을 내다 버린 나머지 성도들의 신앙 양심을 다치게 하고, 결국은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영적 난민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주님이 주신 소중한 평화의 기회들을 걷어차 버리면서 "주님의 때가 아니라"며 핑계댈 수 없다. 이 땅의 소모적 대결이 오래가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게 맡기신 평화의 명령올 준행할 의지가 없었고, 남아도는 재물과 국내외적 역량을 묻어 두거나 거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 중 알부는 공공의 것들을 도적질하는 데 골몰했고, 나라의 도둑들을 배출하고 옹호한 교회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영광스러운 교회가 우리 당대에 수모를 겪는 것과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을 때 신자인 우리는 모멸감과 부끄러움으로 눈물 흘린다. 그러나 이 눈물은 절망과 낙심의 표징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희망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기도와 결단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기도에 있어 낙심하지 않는 것과 중언부언을 피하는 것이다. 지성의 기초 없이 말만 많은 기도는 부당한 교회 세습과 같은 악에 대항하지 못했고, 우리 안의 평화도 깨뜨린다. 바른 기도의 열심은 이것들을 극복하고 선을 이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믿음과 결단에 따른 기도와 행동 권면의 방향을 밝힌다.

하나, 평화의 노력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악의적으로 방해하는 선전·선동물을 만들고 유포하는 죄악을 그만두라고 권면하고 경고할 것이다. 언제나 웃는 것보다는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한 성도 간의 교제라고 믿는다.

하나, 교회 안에 지성의 회복이 절실함을 호소한다. 지적 판단력이 마비된 교회는 죄인들의 먹잇감이 되고 교인들은 자발적 노예로 전락한다. 특히, 민주주의, 다 종교 사회, 국제정치, 남북문제에 관한 지식의 결핍은 시급하다.

하나, 통일과 평화는 다른 죄악을 감추는 면벌부가 될 수 없다. 사악한 이단들이 내세우는 '평화'는 가증한 것이며, 교회의 평강을 깨뜨리고 세습을 감행하는 자들은 평화조차 욕망의 도구로 삼는다. 그들도 평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으나 기여할 소망은 없으므로 동역자로 보지 않는다.

하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남-북-미 간의 대화가 충분히 지속되고 선한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하되 파국을 점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은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라 막아서는 것이며, 대중들의 예측은 그 자체가 변수다. 우리가 평화를 간구하면 평화를 받을 줄로 믿는다.

2018년 4월 5일

2018 평화 기도회 모인 기독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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