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에서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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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기에서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시리아에서 온 한 친구가 있습니다. 시리아 최초의 유학생으로 한국에 왔다가 시리아내전이 발발한 이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기에 최근 제주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돕기도 합니다. 며칠 전 그 친구로부터 참 민망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낯선 연락이 와서 받아보니, 제주에 있는 예멘난민들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낯선 분들이 찾아와서 적지 않은 돈을 주려고 하는데, 이 분들이 어떤 분들이고, 이 돈은 어떤 돈인지, 우리가 이 돈을 받아도 되는지에 대해 통역을 부탁하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통역을 해 주던 중에 이 친구는 몇 번이나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는 것입니다. 찾아오신 분들은 어떤 분들이고, 이 돈은 어떤 돈인지에 대해서 묻자, 본인들은 모교회에서 왔고, 우리가 어렵게 헌금을 모아왔으니, 당장 이 돈으로 항공권 사서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재차 물었지만,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친구가 그러시면 안된다고, 자기 나라의 위험을 피해서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는 친구들에게 그러시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교회에서 왔다고 한 그들은 “너 같은 X들이 있으니까 위험한 난민들이 우리나라로 몰려오는 것이야”라면서 오히려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전쟁과 학살을 피해서, 무차별적인 징병을 피해서,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들을 그 전쟁터에 남겨두고서라도 홀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교회’가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이슬람화를 막기 위해서, 다시 그 참혹한 전쟁터로 다시 되돌려 보내려 한다? 글로 쓰기에도 슬픈 문장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로 인해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국가의 법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믿고 있었던 대법원이 오히려 권력의 시녀역할을 했다는데서 온 국민이 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사법부의 농단사태를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와 제도적 장치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교단 내에서는 이런 사법농단 사태가 버젓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명성교회 세습건에 대한 합법여부 판결을 놓고 수개월을 끌어오던 통합 총회 재판국이 결국 명성교회에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누구도 수긍할 수 없는 판결, 심지어 찬성표를 던졌던 재판국원 자신들조차도 떳떳히 말할 수 없는 이 판결의 배후에 거대한 명성의 힘과 돈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변호의 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참으로 옹색하기 그지 없지만, (비록 방법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그것이 명성‘교회’가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불법으로만 살 수 있는 교회? 아니 그런 교회를 꼭 그렇게까지 해서 살려야 합니까? 비통합니다.
한 때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중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청춘의 때에 겪는 여러 아픔과 고통의 문제를 마치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로 미화하면서 청춘들에게 가혹하고 부조리하기만 한 현실의 모순을 덮어버렸습니다. 이 논리 속에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아픔과 고통은 더 나은 나를 위해서 내가 기꺼이 감수해야 할 기회비용인 것입니다. 한 때 많은 이들이 이 말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그럴까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이 말은 20세기 초 미국의 아나키스트이자 작가였던 엠마 골드만이 한 말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 가되, 마땅히 오늘 풀어야 할 과제들을 언젠가 홀연히 임할 ‘그 날’로 다 미루어 놓은 채, 그 날을 위해서, 아니 그 날의 그 무엇을 위해서 오늘 내 옆에 있는 약자를 억압하거나 추방하고, 그 날의 그 무엇을 위해서 오늘 여기에서는 정작 희생과 침묵을 강요한다면, 그렇게 해서 얻어진 혁명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도전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나라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고 희망하는 하나님나라가 오늘 누군가를 억압하고 추방해서 얻어지는 나라라고 한다면, 오늘의 심각한 불법과 부조리함에 침묵해야지만 가능한 나라라고 한다면, 그 나라의 모습은 뻔한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성서가 보여준 하나님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바꾸어 말하면, 오늘 예멘의 형제들을 기꺼이 맞이하고 사랑할 수 없다면, 오늘 명성교회와 통합총회의 불법에 대해 저항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아닐 것입니다. 평화!
임왕성 국장 (성서한국 사회선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