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력 발상 토크 1 - 청춘을 위한 정치 (1부 : 패널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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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한국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공동으로 주최한 지난 3월 28일,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지하2층에서 열렸던 [청춘력 발상 토크 : 청춘을 위한 정치]의 내용 전체를 올려 드립니다.
(1부 : 패널 토크)
김형원(이하 김) :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이번 총선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변상욱(이하 변) : 여당은 하나인데 야당은 여럿이니 훨씬 불리한 것은 맞다. 부동층이 어느 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큰 변수는 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남아있는 부동층도 기존 투표층과 비슷한 비율로 쪼개지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껏 여당을 쉽게 지지하지 않고 부동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성향 상 야권이 그나마 부동층에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 조금 더 클 수는 있으나 거의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물론 각 후보자 개인에 따라 반전이 일어나는 곳은 몇 군데 생길 것이나 그것도 여권 야권 나뉘니까 큰 변화는 예상 못하겠다.
김 : 지금 여론조사는 어떻게 나오는가?
변 : 이게 천기누설이라...(웃음) 설마 (새누리당이) 180석까지 되겠는가. 관전 포인트는 역시 국민의 견제심리가 어디까지 작용하는가이다.
오찬호(이하 오) : 나는 언론인이 아니라서 결과 예측에 대한 분석보다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정당들의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남은 기간이 짧은 만큼 그 동안 못했던 홍보를 위해서 한국 선거판의 고질적인 병폐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 : 최근 새누리당이 개헌선인 200석까지도 넘기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기도 한다. 왜 새누리당을 위시하는 보수 지지층은 콘크리트일까?
변 : 큰 틀에서 보자면 역시 남북관계가 가장 큰 원인이다. 피난민 출신 70,80대와 전쟁 후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성장과정을 보냈던 50,60대에게는 여전히 영향이 크다. 우리 처가 쪽 어른만 해도 노무현, 김대중 등 야당 지도자가 간첩이라 생각하신다.
김 : 50대 이상의 이런 모습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
변 : 그런 건 없지만 문제는 체험이다. 무고한 동료들이 총을 맞고 숨지는 걸 목격하며 피난길에 나선 세대가 그걸 어찌 털어버릴 수 있겠는가.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이란 그렇게 강한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은 다 좌파, 간첩으로 보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이 정도 경제 수준이면 노동자가 많고, 노동자가 많으면 노조가 힘을 갖고 계층의 불만과 저항을 주도하는데 우리나라는 자영업이 많다. 대개 점포경영이나 사업자가 많으면 사회가 불안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영세하지만 성향은 보수적인 자영업자들이 많게 된다.
김 : 예전에는 세대별로 보수와 진보의 성향이 갈리는 경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청년들 중에도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가.
오 : 원래 보수는 유지하려는 정체성이지만 진보는 그 자체가 저항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할만한 시대적 조건도 갖춰야 한다. 사실 교육에서 부터 그런 시민 의식이나 비판 정신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나라의 교육은 저항과 반대 의견 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체계이다. 청년들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진보적인 의견을 가지지만 안보에서 만큼은 보수적이다. 보수가 모든 면에서 완승을 거둔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이 자라고 있다. 이런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란 이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보수적으로 흘러온 것 아닌가 생각 든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진보는 이런 구축에 실패했다고 본다. 이런 전략이 진보에게는 부족하다.
김 : 보수는 안보와 경제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데 진보는 아젠다가 너무 많고 각자 주장도 다른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변 : 보수와 청년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 같은 나이 든 세대의 1시간과 청년들의 1시간의 부가가치는 굉장히 다른 것 같다. 청년들의 한 시간은 굉장히 압축적이고 소중하다. 그래서 청년들은 시간을 쓸 때 효능성을 보게 된다. 투표장에 나가 행사한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고 의미 없다 여겨지면 기성세대보다 더 허탈해 하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사표의 가능성이 크다고 진보 정당에 청년들의 표가 모이지 않는 점도 있다.
김 : 이런 상황인데도 소신 투표를 하는 것이 답일까?
오 : 그런 인식 자체도 한계라 생각한다. 선거에서 꼭 의원이 배출되어야만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크지 않아도 지난 선거보다 진보 정당의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올랐다면 그 만큼의 오른 지지율을 바탕으로 더 힘 있게 일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중요한 동력 아닌가. 정치가 너무 당선에만 좌지우지 되고 있다.
변 : 1등만이 모든 것을 가지는 소선거구제라서 이런 모순이 더 크게 다가온다. 중대선거구로 바꾸는 것이 정치개혁의 중요한 문제인데 지역구도에 기대고 있는 거대 정당들이 안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성향의 유권자가 뜻을 모은다면 지역구는 제 1야당, 비례대표는 소수 진보정당으로 표를 몰아주는 전략들도 나오겠으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선거연대가 필요한데 지금 잘 안 되고 있으니...
김 : 더민주에서 그렇게 과감한 연대안을 제안 할 수 있을까?
변 : 그런 작업은 큰 틀에서 오랫동안 공들이고 세부적인 과정에 들어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오 : 그러기도 전에 보수 언론이 미리 프레임을 조성해 버린다. 오래된 전략이지만 우리가 늘 속고 있는 전략이다.
변 : 진보정당의 존재 당위성에 대해 비유로 말하자면 꽉 막힌 벽에 작은 창문을 낸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창문은 작아도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매우 큰 것이다. 선거 공학적으로는 표가 사표가 되어 사라지는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진보정당의 가치는 더욱 커져야 한다.
김 : 진보정당이 가장 많이 의석을 차지했을 때가 언제인가?
변 :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의 13석이 가장 많았다. 앞으로 그 만큼의 의석이 나오기란 당분간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 이상이 되어야 한국 정치가 균형을 잡지 않겠나.
김 : 청년의 낮은 투표율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어느 정도 될까? 왜 청년들이 투표장에 잘 안 간다고 생각하는가?
오 : 청년 투표율 문제가 이슈가 많이 돼서 이제는 이에 대한 분석이 꽤 나온 편이다. 요즘 20대의 투표율은 30대 투표율과 거의 비슷하게 올라와 있다. 아마도 기대만큼의 투표율이 안 나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20대가 가장 분노해야 할 세대이지 않냐는 인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의 20대들의 상황에서 볼 대 지난 대선에서의 70%는 기적에 가까운 투표율 아니었나 생각한다.
변 : 최근 어떤 분석에서는 청년들 가운데 여성은 진보로, 남성은 보수로 옮겨지는 경향이 보인다고도 한다. 가령 2002년 촛불 세대였던 여중생들이 20대 이상이 되면서 투표에 반영된 것은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여성들의 감수성이 훨씬 민감한 데서 오는 것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엄마들의 반응은 아저씨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김 : 이런 현상이 학교 현장에서도 느껴지는가?
오 : 학교가 아니더라도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4배 가량 성장했다. 과거에 비하면 이제는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수평을 요구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관심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변 : 여성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서 받는 차별로 젠더적인 관점을 더욱 체감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사회적 감수성과 분노가 이 사회를 진보로 이끄는 동력을 보태고 있다고 분석할 수도 있겠다.
김 : 386세대와 청년 세대를 비교하면서 서로 간에 갈등이 오고 가기도 한다. 그런 비판에 대해 대항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은 비교적 적다는 생각이 든다.
오 : 개인적인 견해로 지금의 청년들이 80년대처럼 저항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적이 있었던 독재의 시대에 비해 지금은 과연 적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시대다. 예전에는 광주 항쟁 관련된 비디오만 봐도 아주 명확한 분노의 대상을 인식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주의 등의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 시점과 과거를 단순 비교해서 답답해 할 때 정치 혐오가 생긴다. 과거에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계몽이 이루어졌다면, 지금 청년들은 누군가에게 간섭받는 것을 싫어한다. 계몽이 통하지 않는다. ‘개저씨’와 ‘꼰대’들에게 심리적으로 주눅 들지 않는 세대이다. 계몽의 시대는 끝났다.
변 : 과거 청년들의 욕구는 사회적 참여를 통해 지식인 그룹에 속한다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의 개성을 주체적으로 인정받기 원하는 점이 다른 것 같다.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된 마산 시위에서 김주열 열사가 숨졌던 당시 함께 숨진 사람이 12명 대부분의 나이는 17~21세의 중졸, 고졸 출신의 지금으로서는 청소년 세대였다. 그 때는 중학교만 졸업했어도 일종의 지식인으로의 역할을 요청받던 시대였던 것이다. 지금 세대는 투쟁에는 익숙치 않고 민주주의 문화에는 더 익숙해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김 : 지금은 경쟁이 너무 심해졌다. 조금이라도 한 눈 팔면 바로 도태되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조를 할 수 있겠나. 이런 위험을 청년들이 너무 깊이 체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도(?)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뭔가 변화는 필요하다. 결국 당사자들이 스스로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게 정말 가능하겠는가?
오 :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변하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더 어려워질 뿐이라는 것이다. 저희 어머니도 네가 이런 책을 낸다고 사회가 바뀌겠냐고 말씀하신다. 시민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여론을 형성하여 정치인을 압박해야 한다. 관심은 반드시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회의적인 질문에서 그친다면 미래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변 : 영국이 흔히들 신사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참정권을 따지자면 영국은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시아보다 뒤졌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희생당했고 지방선거에서만 참정권을 주고 중앙정치 무대에는 힘을 발휘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1917년에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여성이 영국 더비 경마장에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외치며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15년이 지나서야 영국은 여성 참정권을 얻을 수 있었다. 작은 날개 짓이 쌓이고 쌓여 변화가 된다. 아무리 작다 해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예 놓을 수는 없다.
김 : 대학 청년들 안에서 앞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주도하는 핵심층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 : 앞장서서 깃발을 들었다가도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작은 깃발을 드는 것도 강성으로 비춰질까 걱정하게 되는 시대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3,4학년만 되면 SNS 세탁을 한다. 그렇게 자기 검열이 강해졌다. 설령 깃발을 든다고 해도 따르는 숫자가 워낙 적어서 금방 꺾이고 만다. 4.19 때의 저항이나 고문받던 시절 나타났던 청년의 저항과 지금 청년들의 저항에 간극이 크다. 이제 저항은 꼭 그런 거창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변 : 우리나라 정치의 성격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눠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정당정치가 있다. 둘째는 지방정치다. 셋째는 생활정치다. 주로 시민단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넷째는 생명정치라는 새로운 영역이 열렸다. 가령 세월호 참사로 안전 사회에 대한 열망이 피어올랐고, 알파고를 통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윤리적 고찰이 정치에도 점차 필요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는 권위적인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의 정치, 해방의 정치다. 우리나라는 정책에 따른 선택으로 선거정국이 펼쳐지지 않고 아직도 저항과 해방의 정치가 혼재 되어 있다. 정치가 심각해지는 이유다. 야당은 항상 정권교체 같은 저항의 아젠다를 들고 나온다. 온전히 끌고 가지 못하면서도 버리지도 못한다. 국민 역시 정책선거와 저항정치 사이의 애매한 중간 지점대에 항상 놓여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할 때, 나는 과연 정치의 어떤 영역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선택하고 비중을 재서 참여하면 된다. 정당정치 저항정치만이 정치의 영역은 아니니까.
김 : 정치에 꼭 관심을 가져야 할까? 정치가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변 : 세상을 바꾸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다. 민주는 주인의 권리를 의미하고 공화는 주인으로서 나누어 맡은 공적 책임을 의미한다. 모든 국민이 자기의 책임을 자기 자리에서 행하면 된다. 투표도 하고 사람마다 시민단체에 가입해 회비내며 운동에 참여하면 나라가 확 달라질 수 있다.
김 : 자유총연맹 같은 곳에 가입해도 상관 없는가?
변 : 관계없다. (웃음) 자기의 사고에 의해 스스로결정하고 자기 신념과 맞는 곳에 가입해 활동하면 된다. 대개는 여론조작에 휩쓸리고 이념에 묻혀서 판단하는데 그건 올바른 자기자신의 판단이 아니다.
김 : 우리 청년들에게 과연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
오 : 어느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비평적인 잡지를 구독하게 한다. 시민으로써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하는 교육을 받는다. 교육이 이런 확신을 가지도록 해줘야 하는데 우리는 교육현장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
변 : 이런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정치에 발을 디딘 것이다.
오 : 동물은 지금까지 정치를 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보다 효율적인 투자로 큰 결과를 얻기 위해 정치를 한다. 인간과 동물의 큰 차이점은 정치 아닐까. 인간답게 사는 결정적인 증거가 정치라고 생각한다.
변 : 유엔이 국제 청년의 해를 정한 적이 있었다. 청년들의 창의적인 열정을 받아들여서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하라고 기성세대에 던지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대한민국만 이걸 세계 청소년의 해로 바끄어 콜라텍을 만드는데 썼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정책이 청소년에 맞춰지는 웃픈 일이 벌어졌다. 사실 청소년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다. 조금 옛날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엔 고졸, 공돌이, 군바리, 재수생, 대학생이 존재했다. 여기에 청년은 없다. 이들은 서로 만나면 안되도록 되어 있다. 서로 만나 묶이면 4.19 같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청년을 단일 카테고리로 합쳐서 보지 않고 나누어 격리시킨다. 청년 정책이 없고 청소년 정책만 여성 가족부안에 들어있다. 청년은 돌봄을 받아야 하는 피동적 존재로 본다.
김 :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세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변 : 그래도 촛불 때 주로 일어나던 세대 아니었나.
김 : 촛불 때에도 오히려 청소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오 : 그래서 저항이 잘 안 일어난다.
김 : 최근 미국에 샌더스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면을 보자면 오히려 하위 계층이나 히스패닉등은 샌더스보다 힐러리를 더 지지한다. 샌더스를 더 지지할 것 같은 층인데 말이다. 가난한 이들이 새누리당을 더 지지하는 이런 거꾸로 가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왜 정치에 이성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오 : 감정으로 작동되는 것도 정치라 생각한다. 이런 현상이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약자들은 샌더스의 공약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차라리 힐러리나 오바마 같은 사람들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익의 포인트를 제공하니까 상대적으로 더 낫게 보이는 것이다. 청년들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도 진보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변 : 보수 여당의 프레임은 국가안보와 경제 회생, 기업이 잘 되는 것이다. 이런 명분은 거부하거나 부인 할 수 없다. 거기에 국민 통합까지 더하면 완벽하다. 이를 깰만한 프레임이 야당에게는 없다. 노동자나 농민들에게는 계급적인 인식이 거의 없다. 계급으로 표가 갈려야 진보도 가능해지고 개혁적인 성향이 나오는 것인데 한국은 그냥 연령별로 나뉘어져 있다.
김 : 언젠가 김무성은 새누리당의 전략은 정치 무관심을 이끌어서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 행사의 시작과 중간에 길 위의 뮤지션 장현호님의 작은 공연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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