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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한국포럼]2부분과모임-도정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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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한국포럼]2부분과모임

기독정당 정치,기독인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발제 / 도정호 열린우리당 법률지원단 부장, 대학촌교회

사회 / 박창수 성서한국 집행위원
기록 / 박준규 성서한국포럼 준비위원

2부 분과모임은 참여자와 분과위원간의 기탄없는 토론의 장을 열고자 했다. 힘차고 유머러스한 도정호 부장의 발제를 함께한 참여자가 눈빛을 반짝이며 흥미 있게 들었다. 참여의 열심은 2부와 3부 사이의 브레이크 타임을 없애고 토론시간을 늘리는데 모두가 동의할 정도의 활기로 이어졌다.

한 참여자는 “현실감각 있는 좋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특히 좋았던 점은, 지금까지 특별히 정치라고 하면 국회의원 내지는 비서관 등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할 수 없던 차에 법률지원단을 비롯한 각종 정당부서의 실무부처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것 역시 정치 아닌 정치라고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고 말하며 “정치 영역에서의 진실된 크리스챤들의 모습이 너무 적었던 것이 아쉽다” 고 덧붙였다. 주어진 2부 진행 시간상 충분한 토의시간이 부족해 다소 아쉬움의 여운이 남는 다는 게 지배적이나 “내년 행사에서는 좀 더 뻗어 나아가는 좋은 진행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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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당정치의 대표적인 독일의 경우) 독일교회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차이를 정죄와 분리수단으로 삼기보다는 도전과 상호보완의 기회로 삼아서 삶의 제반문제들에 응답했다. 독일교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문제에 입장을 표명하는 이유는 각종 문제를 신앙적인 입장에 근거하여 해명함으로써 문제를 책임 있게 감당하려는 데 있다. 또한 특정문제를 공공토론에 내놓아 좀 더 나은 대안을 창출하여 기독교인 개개인의 신앙이 삶에 개입되도록 노력한다. 독일의 정치인들이 독일 교회가 내놓은 문서들을 무시하고서는 정치를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문서를 통한 독일 교회의 정치참여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기민/기사 연합당은 카톨릭교도만의 정당이거나 개신교도만의 정당이 아니라 두 종파의 기독교적인 공통점을 통합하는 정당이며, 기독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정당이지만 그 가치에 동의하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개방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점에서 국민정당으로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정당을 통해서 정치참여를 어느 정도 구체화하고 있다. 물론 독일 교회가 구조적으로 기독교 정당을 구성하고 있거나 기독교 정당을 종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일 교회와 기독교 정당은 일정 부분의 긴장과 간격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는 정당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앙고백이 교회 자신의 핵심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기민/기사 연합당이 구조면이나 형식면에서 교회와 완전히 분리된 정당이라고 할지라도 기독교인들을 통한 독일 교회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한국에서도 지난 총선 때 한국 기독당이 잠시 존재했었다. 이에 대해 많은 공청회도 열리고 기독교 총선연대에서는 이를 비난했다.

비난의 이유는 크게 2가지로 하나는 공적인 회개가 필요함에도 이를 무시했다는 것과 한미동맹유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유지, 적조현상차단, 분단유지 등 수구보수의 논조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현재의 상황 하에서 기독교 정당은 반대한다.

아직 성숙되지 못한 기독교 정치의 하드웨어에 넘쳐나는 정보로 인해 몇 세대 앞선 소프트웨어를 장착할 수는 없다. 지금 기독교 정치운동도 한국기독당과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본다.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기독교 운동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일반 국민들이 지지를 해줄지 회의적이기만 하다. 차라리 기독교정당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독실한 크리스챤을 이런 모임에서 잘 훈련 시켜서 각 정당에 사회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이것이 더 성경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건대 첫 번째는 기독교인들조차도 기독정당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캐톨릭을 비판하는 것 중 하나가 그 잘난 교황은 왜 스탈린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느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젊은 학생들이 피 흘리고 대로에서 군화 발에 짓밟힐 때 그들은 어디 있었나?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그 군부정권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기도를 했다. 그 대가는 무엇일까? 교회 내에서의 그들의 기득권 보장이었다. 이제는 이러한 기회주의적 성향을 또 다시 드러내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통렬한 회개 없이 변화된 사회 속에서 묻혀 가려고 하는 것을 눈 있고 귀 있는 크리스챤들은 알고 있다. 세 번째는 기독정당은 정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나 실무능력 배양도 없이 성숙된 사회 속에서 단지 예수의 이름만 팔고 있는 건 아닌지 대부분의 사람들조차 회의하고 있다.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부분이 무엇인지 일반 국민들에게 내놓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수레바퀴와 싸우는 사마귀가 아닐지...

그렇더라도 정치적으로 성숙한 기독인들을 정치적 지도자로 내세울 수 있는 그런 모델도 한번쯤 재고 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 역사 속에서 많은 기독인들이 명멸해갔다. 대표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그랬고, 김영삼 대통령이 그랬다. 아직도 나이 드신 분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칭송하고 있으며, 김영삼 전대통령은 그다지 좋은 평판은 아닌 걸로 안다. 한 분은 다니시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나가게 한 걸로 안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있지만, 이들은 기독교인에 불과했지, 진정한 크리스챤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준비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 단지 표를 위해서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가 된 사람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교회 역시 크리스챤 정치인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미전도 종족 선교나 해외선교에 한국만큼 열정적인 나라가 없다. 하지만 한국이 이렇게 썩을 대로 썩었는데 도대체 어딜 선교한단 말인가. 지금이 기회다. 한국에 젊은이들의 피와 땀이 하나님의 깃발아래 흘려져야 한다. 교회는 젊은이들을 문자적 의미의 선교사 파송에만 신경을 집중 할 때가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뜨거운 피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파송해야 한다.

이것이 바람직한 기독교의 정치참여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정치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형벌중의 하나라고 본다. 형벌이긴 하지만, 노동의 형벌처럼 달게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고 감당해야 할 형벌로써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할지는 하나님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형벌이기에 가장 현명하게 풀 수 있는 방법도 하나님이시다. 기독교가 국민들에게 정치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첫째, 교회의 연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런 하나됨을 통해서 기도와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성경에 기초해서 기독교의 의견을 사회에 표방한다면 이게 바로 기독교의 정치참여가 아니겠는가.
둘째, 교회는 젊은이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신학대학을 보내고,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에만 열정을 쏟을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대한민국을 위해서 지도자로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그리고 자원하는 청년들에게 선교사를 양성하는 마음으로 교회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이럴 때 세상에서 크리스챤의 활동이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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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참여하고 있는 정치 현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범죄와 정치는 사람이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정치 소용돌이의 한 중심에 떨어뜨려 놓은 하나님의 손길은 놀랍기만 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고 그렇게 오랜 세월 기도하고 준비했었지만, 실패로 단련시키시더니 급기야 무관심할 정도로 싫어했던 정치계의 중심에다 갖다 놓으셨으니... 어느 직장보다 많은 일들이 하루아침에도 몇 건씩 터지는 곳이다 보니, 인생의 첫 직장으로 들어온 저는 적응하는데, 그리고 현실을 인식하는데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정당은 제게 직업이면서 또 주님의 계획을 실행하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챤에게 무엇이 되느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뜻을 펼치고 있는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 현장정치에서 기독교적 가치관과의 주된 갈등은 무엇 이었으며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매 순간이 갈등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표현은 원리원칙대로의 판단이 아니라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우회적 표현이니까요. 그런 순간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의문을 먼저 품고 고민을 합니다. 주어진 선택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어긋나는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때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

- 정치는 내부적으로 자기들끼리 다 정해놓고 통과하는 형식만 갖추는 거 아닌가?
절대 아니다. 법안이 하나 완성되거나 정책이 입안되기까지 관련기관과 간담회△사회단체△ 일반인과의 공청회△전문위원들의 내부검토△정책위원회의 검토△법안 초안 작업△상임위원회상정 통과△본회의 의결 후 법 공포까지는 숨막 히게 바쁜 작업의 연속입니다.

- 기독교의 문제를 정치 공간에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적 이슈에 대한 지지세력은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관철시켜 나가고 있는지
물론 기독교의 이슈 역시 정치권에서 당연히 다루고 있고, 또 다루어야 할 이슈이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이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50.5%가 찬성하고 49.5%가 반대하는 사안이라면 50.5%의 정책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힘든 점이다. 그렇다고 49.5%를 방치할 수도 없고 이 부분에 대한 보완책까지 강구해야 한다.

- 기독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했다가 정당등록취소의 경우처럼 생존문제가 있을텐데
물론 이 쪽은 정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사명감으로 버텨야 하는 곳이다. 성경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붙잡고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 나머지 고민은 주께서 해결해주시리라 믿는다.

- 조직내 의사소통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나. 인적네트워킹은 어떻게 하나?
적은 인원으로 중앙당이 꾸려지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바보’는 필요치도 않고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순환보직제도라는 것이 있다. 각 부서에 정기적으로 순환하면서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고 타 부서의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다. 이런 제도를 통해서 인적네트워킹을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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