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젼트립] 희년선교회, 선교 그리고 사회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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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은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가장 압축적으로, 가장 근본적으로 말하는 하나의 낱말, 의미, 신앙고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 희년을 과감하게 조직의 이름으로 내세운 희년선교회의 얼굴! 그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28일, 구로동 사무실에서 만난 희년선교회 섬김이들의 인상은 유쾌함, 그 자체였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사역? 즐겁지 않으면 못하지요~” 아! 그러고 보니 왠지 장엄하게,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비젼트립을 구상했던 제가 깜빡 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 우리가 찾는 현장은 즐거운 현장이구나! 고통과 고난, 질곡의 현장을 즐거움으로 바꿔내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겠지요.
외국인 노동자 사역 현장은 이제 치열한 투쟁의 시기를 넘어, 사역의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원초적으로 옥죄던 노동현장의 폭력이 일정부분 제도적 보장으로 완화되고 있음을 전망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물론 쉽게 단정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닙니다. 섣부른 오해를 만들 수 있지요.
오늘자 신문에 나온 다음의 두 기사를 보시죠.
"해고 당하고, 성희롱 당하고, 폭행 당하고…"
지난 7월31일, 카자흐스탄 고려인 3세 이니나씨는 불법체류자가 될 것에 부담을 느껴 체류기한 만료일 자살했다. 지난 1월에는 자녀들이 보고 싶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가, 그 사이 사업주가 고용해지를 신고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 그녀. 이후 일용직을 전전하다 6월초 퇴사한 남편의 임금과 퇴직금 600여만원을 받아 귀국하고자 했으나, 사업주는 연락이 두절됐고 관할 노동청은 그녀의 도움 요청을 외면했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기는 커녕 대학에 입학하는 딸의 등록금도 주지 못하게 됐다는 절망감과, 체류기간이 만료돼 불법체류자가 될 것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집에서 목을 맸다. ‘재입국허가서’까지 받고 고향에 다녀왔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고당했고, 남편의 밀린 임금을 받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하소연 했지만 무시당했다. 이니나씨의 사례는 국내 체류중인 이주노동자 3명중 1명에 해당하는 이주여성들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한편, 이주여성들에 대한 성희롱·성폭력도 심각한 수준. 올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나티다씨(가명·태국)는 한국남성들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다. 나티다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남성들은 태국여성들이 사용하는 컨테이너 숙소에 허락없이 출입해 잠을 자는가 하면, 작업 도중에도 여성들의 어깨나 엉덩이, 심지어는 가슴까지 만지는 등 ‘밥먹듯’ 성희롱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나티다씨는 태국대사관에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호소했고, 대사관의 도움으로 진행된 현장조사 결과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나티나씨처럼 사업장을 옮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했다고는 하나, 사업주의 자의에 의해 언제든 고용계약이 해지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주여성들이 섣불리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에 따른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몽골 여성 아무르씨(가명)는 6년전 몽골에서 만난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대학 졸업을 한 학기를 남기고 한국에 왔다. 그러나 결혼 직후부터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야 했고, 유산까지 경험했다. 이후 남편은 외국으로 떠나버렸고, 혼자 남겨진 그녀는 커피숍 등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혼인 이주여성’에게조차 영주권(F-5)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르씨는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방의 한 배추농가에서 일하고 있다.
“이역만리서 죽은 것도 억울한데, 정작 보상금은 ‘사람 잡은 회사’가 챙기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해 9월 서울 영등포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중국동포 조아무개(당시 45살)씨가 크레인에 고리가 걸리지 않은 거푸집 해체 작업을 하다 떨어져 숨졌다. 사고 직후 3천만원의 보상금을 제시하던 건설업체는 보상금이 적다는 유족의 요구에 선뜻 배가 넘는 6500만원을 제의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이튿날 갑자기 “1천만원만 먼저 주고 나머지 보상금은 (조씨 쪽이) 사고에 관한 모든 서류를 다 회사 쪽에 넘겨주면 16살짜리 큰아들이 성년이 된 뒤 지불하겠다”고 번복해 합의는 깨졌다.
조씨 유족들은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를 찾았고,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숨진 조씨는 일당이 12만원이어서, 유족보상금(일당의 1300일분)만 1억원 이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유족에게 합의금을 먼저 준 회사가 나중에 유족의 위임을 받아 유족 보상금을 대신 받을 경우, 유족에게 합의 대로 6500만원만을 주고도 산재 보상금으로 1억원 이상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재해를 불러온 회사는 한 푼도 내놓지 않고, 물정 모르는 이주노동자의 주검을 이용해 수천만원의 ‘이익’까지 챙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 성남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사자드(36·인도)는 지난해 11월 공장 안에서 후진하던 지게차에 치여 무릎을 크게 다쳐, 한 달 이상 입원했다. 그러나 업주는 “병원 밥은 맛도 없다”며 퇴원할 것을 권유해 10여일 만에 병원을 나왔다. 입원비와 수술비는 모두 회사가 냈다. 이후 사자드는 1시간 이상 서있지 못하는 통증에 시달려, 산재 요양신청을 내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사자드가 비자 만료로 불법체류 신분이 되기를 기다리며 요양신청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뤘다. 이 업체에서는 파키스탄과 알제리 출신 노동자 2명이 각각 기계에 손가락을 찍히고 얼굴을 크게 다쳤지만, 회사가 같은 ‘수법’을 쓰는 바람에 단속반에 쫓겨 자취를 감춰야 했다.
외국인 등록증이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처지는 더 딱하고 심각하다.
경기 평택시 정미소에서 일하던 라티브(22·이집트)는 취업 1시간 만에 지게차가 다리를 덮치는 사고를 당했다. 업주는 불법 고용사실이 들통날까봐 치료비는커녕 고용사실조차 부인했다. 결국 병원 쪽이 나서 증인을 근로복지공단에 조사를 맡겨 구제를 받았다. 경남 함안 금속기계공장에서 일했던 라힘(31·파키스탄)은 허벅지에 떨어진 드릴 때문에 살점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갔으나, 업주는 입원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목발에 의지해 자기 돈으로 치료를 받은 라임은 비자가 만료돼 강제출국당할 처지에 놓였다.
70~80년대 잘려나간 노동자의 손은 경제성장의 그늘이자 노동재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30년이 지난 지금, 그 상징은 ‘이주노동자들의 손’으로 바뀌고 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타자를, 낯섦을 쉽게 용납하고 보호할 수 있는 돌봄과 배려의 문화가 척박한 동네인 것은 분명합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막막한 그들의 가슴... 무엇으로 달랠길 있을까요. 이제 외국인 노동자 사역은 제도의 실효성을 보다 세밀하게 정비하고 보완해야 할 과정 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제도가 놓치고 있는 약점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메꾸는 인내와 치열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외국인 노동자 사역은 의료제도와 법적구제 형식으로, 보다 전문화된 형태의 사역으로 진일보하고 있는 시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계 유례없는 한국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외국인 노동자 사업은(외국인 사업의 큰 의미와 한국사회의 풍토는 별개)나눔과 후원 중심에서 외국인 민족 공동체 형성 지원으로 선회 중에 있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더불어 삶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각 민족별 공동체 형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체적으로 한국사회의 한 일원으로 서게 되는 과정 앞에 서게 됩니다. 물론 이에는 그동안 이뤄졌던 지원 사업이 변함없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외국인 지원사역 현장의 전환은 기독교적 접근 속에서 변함없는 길을 가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근원적인 영적 필요에 늘 답해 왔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사역이 세계선교와 사회선교가 맞아 떨어지는 현장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성서한국을 통해 사회선교 현장을 고민하게 된 지체들과는 어떤 접속이 가능할까요? 크게는 평일의 사무국 지원 사업과 주말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 영적필요를 채워주는 ‘친구되기’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고민해 본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그 중에서 여성의 이중고는? 등으로 확장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화 또는 신자유주의 현상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여실히 만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의 현주소를 고민하면서, 타국에서 외로이 과중한 업무와 재해, 민족차별의 그늘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을 만나 그들을 돕고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현장! 우리의 현장에서 어떻게 연결 가능할 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