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꽃: 11월] 세상읽기_천양희
페이지 정보
2,072본문
세상읽기
천양희
세상을 뜻대로 읽고 싶어
가출을 출가로
불성을 성불로
유수를 수유로 읽어보다가
세상을 거꾸로 읽고 싶어
정부를 부정으로
선생을 생선으로
교육을 육교로 읽어보다가
세상을 마음대로 읽고 싶어
가능을 능가로
입산금지를 지금 산에 들어감으로 바꿔 읽어보다가
세상을 세상대로 읽고 싶어
不二를 이불로
불행을 行不로
유일을 일류로 착각하다가
삶은 삶 외에 더 읽을 것이 없어
나는 나 외에 더 읽을 것이 없어
각자를 자각으로 쓰고 말았네
실상을 상실로 쓰고 말았네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추수하는 가을의 끝자락 입니다.
올해는 어떤 것들을 수확하셨나요?
연초의 결심, 뿌려놓은 씨들을 잘 거두셨는지요?
한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빠르게 가는 시간이 참 야속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결심이 무너졌다고, 수확할 알곡이 없다고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껏 슬퍼하되 이를 악물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살갗을 파고드는 서리의 싸늘함입니다.
그 차가운 느낌을 떠올린다면 다시는 똑같은 과거를 반복하려 하지 않겠지요.
이 슬픔으로 겨울의 씨앗을 만드는 삶의 동력을 내야합니다.
(**『절기서당』,김동철·송혜경,북드라망 참고)
11월의 아름다운 글꽃은 천양희 시인의 <세상읽기>입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세상을 마음대로 읽어대는 이들 때문에 세상을 거꾸로 읽고 싶은 요즘,
세상을 아무리 뜻대로 읽고 싶다 하여 불성이 성불이 되고, 유수가 수유로 되지 않듯
제아무리 뜻대로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참담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뜻대로, 마음대로, 거꾸로, 세상대로 읽던 시인이
삶 앞에서는, 나 앞에서는 더 쓸 것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더!더!더! 라고 외치는 세상에 대한 일침이며,
그런 세상 속에 ‘나’로 살아가기를 애쓰는 우리를 향한 위로입니다.
추워지는 날씨, 천양희 시인의 시를 위로삼으며 오늘을 살아내야겠습니다.
캘리그라피로 재능기부를 해주신 배한나 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아주 짧은 한 문장이 힘이 되어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이 글귀는 꼭 함께 나누고 싶다고 생각되어질 때가 있습니다.여러분께 힘이 되고 싶은 마음, 좋은 글귀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가득 담아 매월 아름다운 글꽃을 피워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성서한국 아름다운 글꽃과 함께해주세요.